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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개발 이론 알기

업무프로세스 재설계(BPR)

업무프로세스 재설계(BPR)

업무프로세스 재설계(BPR): 효율 그 너머의 변화

업무프로세스 재설계, 흔히 BPR(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로 불리는 이 개념은 1990년대 초반부터 기업 경영에 큰 반향을 일으킨 변화 혁신 전략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주창자는 해머(Hammer)와 챔피(Champy)로, 그들의 책 *"Reengineering the Corporation"*은 당시 경영 혁신의 교과서로 불릴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책은 많은 비판도 받았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기대만큼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도 존재합니다.

BPR이 약속한 변화와 그 한계

BPR은 기존의 업무를 단순히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업무 과정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하여 획기적인 성과를 추구하는 접근입니다. 단순한 프로세스 개선이 아닌, 기존 구조와 관행을 완전히 재편하려는 시도로서, 초기에는 상당한 관심과 기대를 받았습니다. 기업들은 BPR을 통해 효율성 향상, 비용 절감, 품질 개선, 고객 만족 증대 등을 꿈꾸며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변화가 성과로 연결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는 점입니다. BPR 프로젝트에 수천억 원대의 자금을 투입했음에도, 그에 상응하는 성과를 거두지 못한 사례가 속출했습니다. 연구자 커밍스와 월리에 따르면, BPR 프로젝트의 **실패율은 60~85%**에 이르렀다고 보고됩니다. 생산성 향상이 없거나 효과가 너무 미미해 투자 대비 효율이 낮았던 것입니다.

실패 원인: 인간 중심의 접근 부족

BPR의 핵심 문제는 인간 중심적 시각이 부족했다는 데 있습니다. 조직을 구성하고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건 결국 사람입니다. 그러나 초기 BPR 이론은 비용 절감을 위해 인력 감축을 우선시하고, 직원들의 참여나 감정, 저항, 적응 과정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조직 내에서 불신과 저항이 발생했고, 변화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했습니다.

챔피 본인도 뒤늦게 이를 인정했습니다. 그는 2002년의 회고에서 “BPR 프로젝트들이 초기에 얻은 효율성은 직원이나 고객보다는 주주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고, 결국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갔다”고 밝혔습니다. 다시 말해, 사람을 소외한 혁신은 지속될 수 없다는 교훈을 남긴 것입니다.

BPR의 의의: 프로세스 중심 접근의 필요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BPR이 남긴 긍정적인 유산도 있습니다. 바로 조직을 구성하는 핵심 단위를 ‘부서’가 아닌 ‘업무 프로세스’로 본 시각입니다. 데이븐포트(Davenport)는 이를 높이 평가하면서, 업무프로세스 재설계의 진정한 장점은 ‘일의 흐름’ 자체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사람’ 중심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전제와 별개로, 조직이 더 나은 성과를 위해서는 업무 흐름과 구조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킨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의 조직개발 방법론에서는 BPR처럼 과도한 비용 절감이나 구조 해체가 아닌, 사람과 프로세스를 균형 있게 고려하는 접근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BPR의 7단계 원칙

해머와 챔피는 BPR의 실행을 위한 7가지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업무를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고 설계하라는 근본적 재설계의 가이드라인이었습니다.

  1. 과업(task)이 아닌 결과(outcome)를 중심으로 조직을 구성하라.
    개별 업무보다 최종 산출물이 중요하며, 결과 중심으로 일의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2. 모든 업무 프로세스를 식별하고, 시급한 순서대로 재설계를 진행하라.
    조직 내에서 어떤 업무 흐름이 존재하는지를 파악하고 우선순위를 세우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3. 정보 처리는 그 정보를 생성하는 활동과 통합하라.
    정보 전달의 단계를 줄이고, 실시간으로 활용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4. 물리적으로 분산된 자원도 하나의 체계로 통합하라.
    기술을 활용하여 분산된 시스템을 통합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5. 동일 목적의 유사 활동은 병렬로 연결하라.
    업무 흐름에서 병목을 없애고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설계합니다.
  6. 결정권은 업무 현장에 위임하고, 전체 프로세스를 통제하라.
    현장의 자율성과 책임을 보장하면서, 전체적인 흐름은 모니터링해야 합니다.
  7. 정보는 최초 수집 지점에서만 입력되도록 하라.
    중복 입력을 줄이고 데이터 정확성을 높입니다.

이러한 원칙들은 단순히 시스템이나 조직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일의 방식 자체를 다시 정의하라는 근본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BPR 이후의 조직개발: 교훈을 통한 진화

BPR이 조직개발 역사에서 완전히 실패한 모델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실패 경험은 “사람을 배제한 혁신은 실패한다”는 뼈아픈 교훈을 남겼습니다. 오늘날 조직개발에서는 여전히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하거나 설계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것은 조직 구성원의 참여와 감정, 변화 수용 능력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진화했습니다.

특히 오늘날의 프로세스 설계는 단기 효율성보다는 지속 가능한 변화, 협업 촉진, 고객 중심, 자율성 강화 같은 가치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으며, 구성원의 동의를 얻고, 변화의 주체로 참여하게 만드는 과정이 강조됩니다.


마무리

업무프로세스 재설계(BPR)는 과거에 큰 기대를 모았으나, 사람을 간과한 탓에 많은 조직에서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남긴 프로세스 중심의 사고방식은 이후 조직개발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 진정한 변화란 시스템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일을 수행하는 방식과 사람의 행동, 문화를 함께 변화시킬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습니다.

기업이 다시금 BPR과 같은 대규모 변화 전략을 고민하고 있다면, 이제는 기술, 구조, 프로세스뿐 아니라 사람을 중심에 두는 통합적 접근이 반드시 함께 고려되어야 합니다. BPR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우리는 ‘효율’뿐 아니라 ‘공감과 신뢰’라는 새로운 기준을 더해 나가야 합니다.